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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의 여왕 어너리
  • 한국의 맛과 멋
  • 등록 2022-07-31 14:22:09
  • 수정 2022-07-31 18: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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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늉 한 모금 머금고 가볍게 입가심하면 치아 사이로 낀 어너리는 남김없이 빠져나오는 나물

나물의 여왕 어너리



 땅속에서 겨울을 지낸 야생 들풀 중에서 가장 먼저 올라와 먹거리가 되는 들풀들이 여럿 있다울릉도에는 명이마늘 냄새가 나는듯해서 이름 하나가 더 붙여진 산마늘그리고 어너리(지역에 따라 어수리)명이는 장아찌로 변신해서 일년내내 먹을 수 있지만 나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어너리는 잠시아주 짧은 기간 내 먹을 수 있다 보니 귀할 수밖에 없다.

 

 모든 들풀은 저마다 효능과 독특한 향이 있고 풍미가 있어 사람 취향에 따라 달리 선택될 수 있으나 유독 어너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켜주고 있다어너리가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되었다고 해서 인기 나물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봄이 오면 나 세상에 나왔어요.’라며 제일 먼저 신고하는 어너리는 임금님은 물론 품위유지를 하면서 식사하는 양반들이 밥상을 물리고 나서 그다지 좋지 않은 도구를 사용하거나 이쑤시개로 긁어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그저 숭늉 한 모금 머금고 가볍게 입가심하면 치아 사이로 낀 어너리는 남김없이 빠져나오기 때문이다거기다 어너리를 먹으면 기분전환은 물론 장 기능과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古書 여기저기에 기록한 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에 묘사된 것을 보면 양반들이 술상 앞에서 허세 부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술잔을 비울 때는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도록 하면 안 된다거나 넙죽 받아 마시면 체통 떨어져 보이니 조심할 것이며 긴 수염이 술에 젖지 않게 하고 안주를 먹고 나면 이빨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손가락이나 젓가락 재주 부려 파내려 하지 말라는 식으로 양반들의 음주 태도를 가르치고 있다허세를 부리는 광경으로 논어’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논어에서 공자 가라사대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로 자더라도 즐거움이….’ 이 문장이 각색되어 우리 민요 창부타령에 등장한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어떠리오

일촌 간장 맺힌 설움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난다.’

 

이를 더 줄여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워보니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난다.’

 

졸가의 한 사람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물은 두 종류로 비름나물과 어너리다비름나물만 보면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참지 못한다내 눈물은 남들이 양파를 까다가 흘리는 것과 다른 성분이다자식이 좋아하는 걸 해주려고 불편한 몸 이끌고 뒷산에 비름나물 캐러 갔다가 넘어지신 그날 이후 약 6개월을 고생하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비름나물을 잊을 만하면 온갖 산나물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맛을 선사하고 나면 한해 생명을 다할 즈음 형형색색의 꽃을 피워 멋까지 선사하는 들풀.

 


지금 해발 1,300미터 부근 함백산의 어너리는 나물의 여왕’ 답게 은단 한 알 크기 꽃망울을 한 접시 모아마치 왕관을 쓴 여왕의 자태로 눈부시도록 화려하고 도도하게 쭉 솟아올라 뽐내고 있다.

 

 

사진 2022.7.29. 해발 1300 고지 함백산 주변

 

 

 ‘한국의 맛과 멋’ 

 이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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