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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6일의 역사- 문수산성전투 발생.
  • 편집국
  • 등록 2022-10-26 00:13:29
  • 수정 2022-10-26 00: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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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의 침략으로 인한 병인양요 당시 우리의 역사를 지켜낸 김포의 문수산성

문수산성전투는 병인양요 당시 문수산성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1866년 10월 문수산성에는 순무초관한성근(韓聖根)이 이끄는 조선군 50명이 배치되어 프랑스군의 내륙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대응 상황을 탐지하기 위하여 10월 26일 새벽 70여 명의 정찰대를 문수산성으로 파견하였다. 프랑스 정찰대의 보트가 20여m 전방 나루에 접안하려 하자 조선군은 일제히 기습 사격하여 5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이후 남문 일대를 중심으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조선군이 화력과 병력의 열세로 퇴각하자 프랑스군은 문수산성을 점령하고 남문 등 여러 시설과 민가를 소각하고 강화로 돌아왔다. 비록 전투는 조선군의 패배로 끝났지만 프랑스군도 다소 피해를 입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강화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 문수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었다

문수산성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년)에 병인박해를 명분으로 프랑스가 일으킨 전투이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진행된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로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사망하자 이를 구실 삼아 천진에 있던 프랑스 극동사령관 로즈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였다.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킨 본의는 천주교 박해에 대한 보복을 구실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은 더욱 거세졌고 조선의 쇄국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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