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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일을 기억하라! - 잊어서는 안 될 학생의 날! 광주학생항일운동
  • 기사등록 2022-11-03 09:03:40
  • 기사수정 2022-11-03 0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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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생 항일 운동(光州學生抗日運動)은 1929년 11월 3일부터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일본 학생의 한국 여학생 희롱으로 일어난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 간 충돌로 일어난 운동이다.


 11월 12일 광주지역 학생 대시위 운동을 거쳐, 호남지역 일대로 확산되고, 서울을 거쳐서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으며 1929년 11월 말에서 1930년 3월에서 5월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된 학생독립운동이다. 경성과 평양, 함경도 등지와 같은 국내 지역과 간도, 연해주, 상해, 북경, 미국, 일본 등에서도 집회 만세 시위가 이어졌으며, 1930년 5월까지 전국적인 동맹휴학, 전국 320개 이상의 학교가 동참한 학생 항일 시위로 변모, 발전했다. 

전국으로 확산된 학생독립운동으로 인해 희생된 학생 수는 퇴학 582명, 무기징역 2,330명 검거 1,462명으로 집계되었다.


1929년 발생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3·1 운동 이후 국내 최대규모의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꼽힌다. 광주학생운동은 무엇보다 3.1운동 10주년을 맞아 항일의 기세를 높이고자 했던 한국인들이 그해 연말과 그 이듬해인 1930년 초까지 민족의 독립 의지를 천명한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제정하고 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세웠다.


혹독한 일제 식민지 시기 모두가 억압받는 상황 속에서 힘들게 저항의 목소리를 낸 학생들이 조국을 위해 피맺힌 절규와 함성이 울려 퍼졌던 11월 3일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그 날에 외쳤던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1929년 11월 6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광주학생 항일운동 당시 격문을 다룬 기사

 

당시 열차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싸우던 박준채

당시 일본인 학생들에게 희롱당한 이광춘 (왼쪽)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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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03 09: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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