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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스타 조선총잡이 김상옥
  • 편집국
  • 등록 2023-01-12 11:36:11
  • 수정 2023-01-12 11: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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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사람의 일본 군경이라도 더 사살하려 이불을 두르고 홀로 일본 군경 400명과 맞써 싸우다

독립운동의 검거지였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400여명의 일본군경과 홀로 맞서면서 방어용 이불을 찾아가면서 한사람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각오로 투혼을 불사른 조선의 총잡이 김상옥을 다시 소환한다.


김상옥(金相玉, 1890년 1월 5일 ~ 1923년 1월 22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며 다른 이름은 김영진(金永振), 아호는 한지(韓志)· 의엄(義嚴)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면서 한학을 수학하는 동시에 어의동보통학교를 다녔다. 10대 중반부터 기독교에 입문하고 서울 동대문감리교회를 다녔다. 야학에 다니면서 물산장려운동을 벌이고 경상북도 풍기군에서 결성된 대한광복단에 참가하는 등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김상옥은 창신동에서 영덕철물상회를 자영하고 한 때 종업원만 50명에 가까울 정도로 컸었다. 김상옥은 이를 모두 독립운동에 쏟았다. 그는 말발굽을 만들어 히트를 쳤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머리카락이 잘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수있는 말총모자를 선보였다


1920년 8월 24일, 미국 의원단이 동양 각국을 시찰하는 길에 내한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1920년 5월부터 북로군정서 김동순, 윤익중, 신화수, 서대순 등의 동지를 지휘해 환영하기 위해 나오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및 일본 고관을 암살하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거사 계획은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일본 경찰에게 탐지되었고, 동지들이 붙잡혀 단독으로 거사를 추진했으나 여의치 않자 10월 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이시영, 조소앙, 신익희 등과 독립운동 거사 계획에 참여하는 동시에 의열단에 입단하였다 .


대한 임정 군무부 행정관 직책으로 발탁된 그는 1922년 10월 권총 3정과 실탄 800발 및 폭탄 그리고 항일 문서를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한 뒤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인 경찰 및 어용신문 매일신보사의 사원 1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알려져 있다. 투척 사건 이후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피신하던 중, 사이토 총독이 회의에 참석하러 도쿄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암살할 목적으로 서울역 주위를 수일간 배회하다가 종로경찰서 무장 경찰 20여 명에게 포위되었다. 김상옥은 그들과 총격전을 벌여 유도사범이자 형사부장인 다무라를 사살하고 경부 20여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고봉근의 집에서 경부 20여명에게 포위당한 후, 반격해 중상을 입혔다.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사진 출처 네이버)

사이토마코토 총독(사진 출처 네이버)

김상옥은 1923년 1월 22일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1천여 명의 일본 군경에게 포위당해 민가의 지붕을 뛰어다니며 권총 두 자루로 무려 3시간 반 동안이나 일본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총알마저 떨어지자 벽에 기댄 채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마지막 1발을 스스로의 머리에 쏘아 자결해 순국하였다.

김상옥은 순국하고 나서까지도 일본군들을 떨게 했는데, 눈을 뜬 채로 사망하여 그의 시신을 본 졸개들이 두려워하여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의 어머니를 불러다 생사를 확인하게 하였다. 나중에 김상옥의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했을 때 확인한 결과 몸에는 총 11발의 총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자결에 사용한 두부의 1발을 제외하면 10발의 총알을 맞은 것이다. 신념은 총알로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였으며 수백여 명의 추격을 받으며 3시간 반이나 총격전을 했음에도 피격당한 총알이 10발밖에 안 된다는 것도 대단하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김상옥 의사-

 

그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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