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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와 김삿갓. 다시 짚어보기
  • 편집국
  • 등록 2023-01-30 12:17:04
  • 수정 2023-01-30 12: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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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경래의 난은 김삿갓이라는 대시인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시험문제에 숱하게 다루었던 홍경래의 난을 다시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특히, 방랑시인 김삿갓의 운명을 결정짓게 했던 홍경래의 난. 

김삿갓의 본명 김병연이 과거시험을 보러 간 시제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때 가장 먼저 항복을 하여 도망갔다는 김익순을 고발하라는 시제가 나와 멋지게 고발을 하였는데 김익순이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된 후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 수 없다는 자괴감에 그 길로 삿갓을 쓰고 평생을 유랑하게 했다는 드라마틱한 실화도 담겨있다.


홍경래의 난(洪景來ㅡ亂)은 1811년(순조 11년) 음력 12월 18일(양력 1812년 1월 31일)부터 1812년(순조 12년) 5월 29일(음력 4월 19일)까지 홍경래·우군칙 등을 중심으로 평안도에서 지방 차별과 조정의 부패에 항거하여 일으킨 농민 항쟁이다. 


1800년 대에 들어서 조선에는 세도 정치가 이루어져 나라가 혼란스러운 데다 자연 재해와 전염병까지 겹쳐 농민들은 살아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당시 몰락한 양반이었던 홍경래는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별 대우와 지나친 세금, 탐관오리의 수탈을 견디다 못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조선 시대에 서북인을 일반적으로 문무 고관에 등용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격문에서 홍경래는 “임진왜란 때 재조(再造)의 공이 있었고, 정묘의 변에는 양무공(襄武公, 정봉수)과 같은 충신이 있었다. 돈암(遯庵, 선우협)·월포(月浦, 홍경우)와 같은 재사가 나도 조정에서 이를 돌보지 않고, 심지어는 권문세가의 노비까지 서북인을 평한(平漢)이라고 멸시하니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완급(緩急)의 경우에는 서북인의 힘을 빌리면서도 4백 년 동안 조정에서 입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였다.

조선에서 사실상 서북인을 중요한 자리에 임용하지 않았으나 이것이 정책적인 것은 아닌 듯하다. 선조 때 이이가 서북인의 수재(守宰, 지방관)가 되는 자가 적으므로 지방 인재의 등용을 상책(上策)한 것은 이를 증명한다. 다만 중앙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는 서북인의 불평불만을 이용하여 거사의 첫 조건으로 내세워 민심을 얻기로 꾀하였던 것이라고 하겠다.

다른 기록에 보면 사마시에 실패한 뒤 그 급제한 자를 보니 모두 귀족의 자제들이었다. 당시 과거 제도도 크게 부패하여 권문세가의 자제는 무학둔재(無學鈍才)라도 급제의 영예를 차지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쉽게 성공할 수 없으며, 특히 평안도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있으니, 이것이 홍경래로 하여금 개조범상(改造犯上)의 뜻을 굳게 하였다고 하였다.


결과

홍경래는 총에 맞아 죽고 우군칙·홍총각 등 다수는 포로가 되어 한양으로 압송된 후 음력 5월에 참형되었다. 이때 2,983명이 체포되어 여자(842명)와 열살 이하의 남자 소년(224명)을 제외한 1,917명이 전원 처형되었다. 


실패 이유

홍경래의 난은 많은 준비와 세력을 등에 업은 대규모 반란이었으나, 진행 중 몇 전투에서 패하여 기세가 수그러들자 빠르게 진압되어갔다. 이는 홍경래 세력이 같은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각자 다른 이해를 가지고 모여든 세력이었던 것이 이유이다. 처음에 성공을 거두어 기세가 강했을 때는 전력 이탈이 없었으나, 몇 번 실패를 하면서 가능성이 낮아지자 발을 빼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비록 난은 실패하였지만 많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19세기 농민들의 의식이 성장하고 새로운 저항의 시대를 열어가는 기폭제가 되어 이후 조선 곳곳에서 발생한 농민 봉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홍경래의 난이 없었다면 김삿갓이라는 대시인도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내 삿갓 / 김삿갓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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