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분쟁사건에서 형사조정제도 활용해 보자.
지하철이나 택시에서 손전화기를 두고 내린 적 있습니까? 전화기에는 중요 정보가 담겼고, 주로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라 없으면 참 곤란하다. 전화해도 받지 않고, 좀 지나면 전원이 꺼져 있다. 폐쇄회로 영상을 뒤지고, 경로를 추적하여 겨우 누군지를 찾아낸다. 남의 전화기를 가져간 것이 범죄일까?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전화기를 잃어버리면 본인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이렇게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가면 형법 360조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된다.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돼 있다. 2년 전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에서 보조전지를 충전하다가 하도 멀미를 심하게 하는 통에 잊고 내렸다. 해운사로 이리저리 전화해 봐도 추적할 수 없었고, 다음날 되돌아 갈 때 직원에게 얘기했더니 ‘청소하면서 발견한 것은 없다’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들었다. 나도 폐쇄회로에 기록된 영상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접었다. 직원이 형사 범죄로 인식했다면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잘못했을 때에는 대개 민사 책임을 진다. 건설분쟁사건은 대개 민사 사건이지만 2020.5.1.부터 ‘건축물 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안전점검, 화재성능, 철거공사 등에 대한 벌칙이 강화되어 형사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합의하면 좋겠지만, 상대방이 딴청을 부리면 참 풀기 힘들다. 민사절차로 해결하려면 소송제기, 변론, 판결, 강제집행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형사죄로 고소하면 경찰이나 검찰이 조사해서 처리하니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른바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다.
우리나라에는 형사 사건이 많은 것 같다. 검찰청 통계를 보니 고소사건이 2019년에 65만여 건이 생겼다. 일본이랑 비교해 보면 몇 배가 된다는 둥 하면서 국민성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악의를 가진 경우를 빼고는 사건을 즐기는 사람이 있겠는가 싶다. 사건이 생겼으니 빨리 해결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일일 것이다.
형사든 민사든 사건에 휘말리면 참 힘들다. 민사 사건에서 재판 날짜만 잡혀도 며칠 전부터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데, 형사 사건이 생겨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받을 날이 오면 심적 부담이 많다. 형사 고소는 이런 압박감을 이용하는 것 같다.
건설공사를 하면서 자기 뜻과 상관없이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사고가 생긴다면 어떻게 수습할지가 중요하다. 경찰 조사, 검찰 조사, 그리고 형사 재판으로 이어지면 보통 일이 아니다.
검찰청은 당사자끼리 서로 합의하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운용한다. 형사조정제도다. 조정위원은 기술사 변리사 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같은 전문가로 구성돼있다. 필자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으로 2007년부터 참여해 왔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연락하기 어렵고, 어렵사리 연결되더라도 본인들이 직접 풀기 어렵다. 이럴 때 중간에서 조정위원이 양쪽 의견을 존중하면서 타협점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피해자는 사건을 빨리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합의하면 사건이 곧장 해결되거나, 후속 처리에서도 그 합의한 사정을 염두에 둔다.
형사조정제도는 지방 검찰청마다 운용한다. 형사사건에 얽혀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조정을 신청해 보길 권한다. 돈이 들지 않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건설 관련 일을 하는 분들도 활용하길 권한다.
투데이 스타 논설위원 고 영회
기술사, 변리사/전 대한변리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