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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따로 있나?’
  • 해덕창주 주필
  • 등록 2026-09-20 16:20:14
  • 수정 2026-09-21 02: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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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장애인인가.
  • 몸이 불편한 사람인가,
  • 아니면 장애인을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진 사람들인가.

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피터 팬 아빠’의 사연은 장애인 가족이 감당해 온 돌봄의 무게가 어디까지 개인에게 떠넘겨져 왔는지를 묻는 사회적 질문이다.


‘장애인 따로 있나?’


‘피터 팬 아빠’의 이야기가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버지를 돌보다 부자가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사건도 그렇다. 우리가 미처 듣지 못했거나 듣고도 외면해 온 이야기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이 비극들은 특정 가족의 불운이 아니라, 장애와 돌봄을 여전히 가족의 몫으로만 밀어 넣어 온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정말 지울 수 없는 영혼의 문신인가? 영화 ‘보물섬’에 등장한 롱 존 실버의 악역 이미지가 너무 크게 각인된 탓일까, 아니면 과거 드라마와 영화 속 외팔이 상이군인의 모습을 왜곡된 시선으로 소비해 온 탓일까. 어떤 이유를 들이대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있다. 정부가 제도로 강하게 뒷받침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일의 고통과 그 가족이 짊어지는 돌봄의 무게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쉽게 실감하기 어렵다.

문제는 우리가 장애인을 불쌍한 존재로만 보거나, 불편한 현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데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편견은 마음속 감정이 아니라 제도와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배제의 방식으로 굳어진다.

 

2026년 9월 5일, 저녁 병동의 배식이 끝나고 어둑해질 무렵 전경철 씨는 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이야기는 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피터 팬 아빠’의 사연을 접한 뒤 내 안에서 끓어오른 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분노였다.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있었으나 제도는 늦었고, 돌봄의 책임은 끝내 한 가족의 어깨 위에 방치돼 있었다. 지금도 이 사회 곳곳에는 전경철 씨와 다르지 않은 삶을 견디는 가족들이 있다. 그들의 고난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아직도 돌봄을 가족의 희생 위에 세워두고 있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전경철 씨의 사연이 더 절박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의 삶이 단순한 ‘부성애 미담’으로 소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들 제원 씨를 20년 넘게 홀로 돌봐 왔다. 성인이 된 아들의 신체는 청년이었지만, 사회성 연령은 두세 살 수준에 머물렀고, 아버지에게 돌봄은 하루하루 반복되는 생활 전체였다. 그러던 중 전경철 씨 자신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자신의 치료가 아니라 ‘내가 떠난 뒤 아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였다. 그는 1년 넘게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과 복지기관을 찾아다니며 아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을 구했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거절당했다. 이 장면은 한 가족의 비극이 아니라, 성인 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국가적 돌봄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가 남긴 책 『안녕, 피터팬』은 바로 이 시간을 기록한 에세이다. 이 책에는 중증 자폐 아들을 ‘피터팬’이라 부르며 살아온 아버지의 사랑뿐 아니라, 간암 말기라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아들의 미래를 걱정해야 했던 한 보호자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전경철 씨는 책의 인세와 관련 수익, 후원금을 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피터팬 재단’ 설립 기금으로 내놓고,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장애인이 24시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었다. 그러므로 『안녕, 피터팬』은 한 아버지의 마지막 고백이자,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진 돌봄의 고발장이다. 그 책이 묻는 질문은 분명하다. 왜 한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서도 병상보다 아들의 거처를 찾아 헤매야 했는가. 왜 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가족 한 사람의 희생과 체력에 기대어 유지되어야 하는가.

누가 장애인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인가,
아니면 장애인을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진 사람들인가.
전경철 씨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해덕 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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