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의 말 한마디가 파장을 불러왔다.
[심수봉의 발언 내용 장면]
심수봉은 지난 9월 20일 전북 진안군에서 열린 ‘제10회 진안고원 트로트페스티벌’에서 김다현의 공연 직후 다음 순서로 무대에 오른 심수봉은 관객들을 향해 “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여기 혹시 그 매니저가 와 있냐? 젊은 아가씨가 노래가 뭔지 삶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고 했고 이어 “노래를 듣고 내가 너무 힘이 든다. 여러분 앞에서 얘기한다. 앞으로 내 앞에 저 선수 내보내지 말아 달라. 나 지금 너무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래라는 걸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인생의 경험도 해보고 고생도 해보고 이렇게 찾아오신 분들을 위로해주는 음악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고 했다.

심수봉 김다현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언론이 크게 다룰 만한 사건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발언을 개인적인 감정의 표출로만 넘기지 않고, 어린아이들을 성인가요 경연의 무대에 세우는 방송 현실을 되묻는 문제 제기로 확장해 보고자 한다.
세계 어느 나라 방송사에서 어린아이들이 어른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며 경쟁하는 프로그램을 프라임타임에 반복 편성하고 있는가? 설령 비슷한 사례가 있다 해도, 그것이 우리 방송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어른의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삼키는 트로트 열풍. 트로트 경연은 어느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출세의 지름길처럼 제시되고 있다. 이는 세계 시장을 겨냥해 훈련과 제작 체계를 구축한 K-pop의 문제와도 결이 다르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아이의 재능을 키운다는 이름으로 아이의 성장 과정까지 흥행의 재료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문제는 어린이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아이에게 맞는 노래와 무대인지, 출연 과정에서 학습권과 휴식권이 보장되는지, 탈락과 평가의 압박을 감당할 보호 장치가 있는지, 그리고 방송사가 어린 출연자의 화제성을 시청률과 수익을 위해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따져야 한다.
지금 방송은 아이들의 재능을 키워주기보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시청률 경쟁의 무대에 올려놓고, 아직 감당하기 어려운 성인의 노래와 감정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심수봉의 지적에도 이러한 현실을 향한 우려가 담겨 있다고 본다. 물론 어린 나이에도 성인의 깊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예외적인 재능은 존재한다. 장한나는 11세이던 1994년 10월 제5회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았다. 이후 로스트로포비치는 그를 가르치고 데뷔 음반을 지휘했으며, ‘한나가 잘못되면 내가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후견인을 자처했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역시 ‘한나의 연주를 듣고 환생을 믿게 되었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한 천재의 예외적인 성취가 어린 출연자를 계속 발굴해 경쟁시키는 방송 관행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공중파와 종편의 가요 프로그램에는 드물게 놀라운 재능을 지닌 트로트 신동도 등장한다. 그러나 몇몇 성공 사례를 모방하고 경쟁이나 하는 듯 더 어린 출연자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가요계 안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쉽게 공론화되지 못했다. 나는 심수봉의 발언을 그 침묵을 깨고 방송가에 질문을 던진 말로 받아들인다.
과거에는 가요 한 곡의 표현과 진행자의 발음까지 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필자 역시 방송 심의에서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아바(ABBA)의 ‘덤 덤 디들(Dum Dum Diddle)’을 소개하며 제목의 억양을 살렸다는 이유였다. 나는 노래의 흥과 운율을 전달하려 했다고 길게 설명했지만, 심의위원장의 답은 ‘너무 날리니까 다음부터 그러지 마세요’라는 짧은 지시였다. 돌이켜 보면 그 심의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사소한 표현까지 문제 삼던 방송이 오늘날에는 어린 출연자의 정서와 학습권, 경쟁의 부담에는 얼마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게 말도 안 되는 지적질을 했던 그때 그런 분들이 지금 공중파, 종편 프로그램을 심사해 주면 좋겠다. 상상이지만 성인프로그램에 어린아이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마다 제동을 걸어 주시지 않을까 여서다.
한국 대중가요 가운데 사랑과 이별, 고독과 회한처럼 성인의 삶에서 축적된 감정을 주로 다루는 노래들은 흔히 ‘성인가요’로 불린다. 그렇다면 방송은 이 장르를 어린이에게 부르게 할 때 최소한 한 가지 고민을 해야 한다. 아이가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내용과 감정을 아이에게 표현하도록 요구하는 일이 과연 아이의 성장에 적절한가?
물론, 해외의 어린 가수들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어린이가 노래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검은 고양이 네로’는 어린이의 상상과 정서에 맞닿은 동요였고, 도니 오스몬드와 마이클 잭슨이 어린 시절 부른 노래들 역시 당시의 나이와 목소리가 전달할 수 있는 감정에서 출발했다. 어린 출연자의 성공을 보여주는 사례라기보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삶과 정서에 맞는 노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1969 이탈리아 국제 동요 경연대회 11회 제키노 도로-Zechino d`Oro- 에서 4살 꼬마 빈첸차 파스토렐리가( 위 사진) 불렀던 Volevo Un Gatto Nero ( 검은 고양이 네로)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 동요는 어린아이들로부터 얻은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비결이 뭘까? 4살 꼬마가 부른 가사 속에는 어린아이가 꾸며낸 가상현실을 동화처럼 표현한 것이며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정서에도 딱 맞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눈물을 짜게 했던 도니 오스몬드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 '마더 오브 마인'(Mother Of Mine)-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 이제 막 사랑을 알아가고 시작하는 시기에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Ben'


마이클 잭슨 도니 오스몬드 (오스몬드 부라더스)
두 사람이 부른 노래는 어린 꼬마에서 청소년 정서에도 딱 맞는 노래였다.
어머니의 온전한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마더 오브 마인'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나의 어머니,
내가 어렸을 때 내게 일하는 방법을 제대로 보여주셨죠,
당신이 안 계셨다면 내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 난 다 컸어요,
그리고 나 혼자 똑바로 걸어갈 수 있어요,
어머니 다정한 나의 어머니'
어른들은 잃어버린 자신의 어린시절을 소환해준 도니와 마이클의 노래에 감동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무엇에 감동하고 있는가?
아이들이 불러서 안될 노래를 경쟁하듯 시키고 그것을 즐기고 있다. 맑은 영혼을 심어줘도 부족한데 체험하지도 못한 성인들의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있다. 어린 출연자가 원해서일까?
어른들이 칭찬하는 그 장면을 보고 너도 나도 저렇게 해서 칭찬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어린이들 사이에 확산되는 그것을 어른들은 걱정해야 한다. 일부 방송은 어린 출연자의 가족 서사까지 예능의 소재로 확장한다.
한 아이의 인기가 부모와 가족의 반복 출연으로 이어지고, 출연료와 화제성이 성공의 척도로 부각되면 다른 부모들도 그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문제는 특정 가족의 선택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어린이의 재능과 가족의 일상이 방송사의 장기적인 흥행 자원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출연 빈도, 촬영 시간, 보상 관리와 사후 보호에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데 있다.
‘성인가요’라는 그 의미에 충실하려면 지금의 방송프로그램은 잘못된 것이고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재편성되어야 한다.
심수봉의 발언은 김다현의 일부 팬들을 중심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듯하다. 팬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출연자에게 성인의 노래와 감정을 요구하는 방송 현실에 대한 심수봉의 평소 우려가 돌발적인 방식으로 표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나라의 미래 자산은 지금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다. 방송사는 어린 출연자를 섭외하기에 앞서 학습권과 휴식권을 해치지 않는지, 인기가 사라진 뒤에도 아이를 보호할 장치가 있는지 부터 물어야 한다. 아이를 위한 무대라면 시청률보다 성장의 시간을 먼저 지켜야 한다. 지금, 이대로는 좋지 않다.
애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뒷동산에 올라가 무동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 밤이면 바느질도 못 한다더라
애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가 달아 드리자
제목 [달 따러 가자]
시 윤석중
곡 박태현
골목길에 모여 놀면서 부르던 아이들의 그 노래 소리, 이젠 환청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해덕 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