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은 없다
(창동·오동동 편)
투데이스타 특집
이창주의 ‘한국의 맛과 멋의 재발견’
취재 지명진 / 사진 정예경 / 정리 김경아
사진 : 마창대교
마산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그리 많지 않지만 물 좋은 마산, 아나고, 아구찜 그리고 ‘오동동 타령’(노래 황정자)의 오동동이 있고 마산사람의 앞가슴일 수도 있는 돝섬이 있다. 지금은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이 더 많지만, 태풍이 휩쓸기 전에는 시가지 어느 곳에서든 한눈에 들어오는 정겨운 섬이었고 김주열의 뜨거운 심장이 살아있는 3·15의거 기념탑이 위대한 그날의 사건을 상징하는 구조물 치고는 너무도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창원시에서 기념탑 주변을 재정비하여 전국 학생들이 한번쯤은 이 곳에 들러 추모의 시간을 가져보는 이벤트를 창원시에서 마련해 주면 좋겠다. 서울 우이동 4·19 기념공원과 비교하면 너무도 초라해서다.
마산수출자유지역, 한일합섬, 제철소가 마산에 들어서고 나서부터 경제성장은 물론 지역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월급날이면 서울 강남 못지않게 젊은이들이 창동 일대 거리를 빈틈없이 채웠고 그 여파는 밤 문화까지 이어졌다. 마산의 명동이랄 수 있는 창동과 오동동일대가 호황을 누리던 그 시절부터 통술집을 운영해오고 있는 김신지(79세) 씨는 “딱 45년 만에 마산이 사라졌어예.”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의문은 쉽게 풀렸다.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어예.” 김신지씨는 70년대 마산 합포구 오동동 중심의 번영을 지켜봐 온 터라 텅 빈 듯한 오동동 거리를 보며 남다른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이 줄어들어서 걱정하는 게 아입니더, 여, 보믄 사람이 안다닙니더, 저어 짜 저 우로 가보시믄 문을 닫은 데가 억쑤로 만타 아입니꺼, 그거 볼 때마다 가슴이 쿵닥쿵닥 합니더, 이거는 아이라예” 김신지씨가 지시한 방향으로 가보니 상권으로서는 가장 중심 지역인데도 건물주가 직접 세 놓는다는 임대 딱지가 여기저기 붙어 있어 한적한 시골 거리나 다름없는 데다 다니는 사람마저 드물어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사진 : 창동거리
갑자기 불어닥친 위기
마산 지명은 이제 없다.
창원은 조선 태조때 의창현, 회원현이 각각 있었던 것을 통합하여 창원이 되었고 1910년에는 마산부 창원군이었다가 1949년에는 진해와 마산만 시로 승격된다. 그러다가 1995년 세 곳 모두 시로 지정되고 나서 15년 후 마산, 진해, 창원이 2010년 7월 1일 창원시 하나로 통합되었다. 한때 농담삼아 하던 말이 있었다. “이렇게 세 곳이 합해져가꼬 마진창이 되었지마는 엉망진창입니더.”
지역경제 발전에 필수조건이 편리한 교통수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사통팔달 뚫린 편리한 도로망과 서울 다음으로 KTX 정차역이 많은 창원을 보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사람들이 쉽게 외지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사진 : 마창대교
도시 이름이 창원으로 바뀌었지만 50대 이후 대부분은 여전히 마산이라는 지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외지인들이 부러워하는 ‘가고파의 고장’에 ‘물 좋고 공기 좋은 마산’을 자랑하며 으시대던 시절은 빛바랜 사진이 되고 말았다. 마산인의 대표적인 자랑거리가 어느새 마산인의 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태풍이 가져온 결과일까? 마창대교 역효과일까? 아니면 통합이 역풍이 된 걸까?
2003년 9월 12일 밤 20시 강태풍을 동반한 폭우와 해일이 마산에 상륙한 태풍 ‘매미’는 바다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바닷물을 몰고 와 지하상가에 큰 피해를 줬고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명피해가 말해주듯 마산시에 끼친 피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사진 정예경 기자)
옛 마산을 살리자!
지역 상권 살리려는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베여 있다. 문화거리를 비롯한 추억의 먹거리와 공연예술을 할 수 있는 야외무대 등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 보았지만 결과가 기대치보다 훨씬 저조했는지 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지속할지 의문이 든다.
“저희도 많은 고민과 정책을 펴 봤지만, 도시재생 프로그램 진행 중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들이 고무풍선논리마냥 계속 생겨나고 있어 한계를 실감합니다.” 기대한 만큼 효과가 없어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가시적으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차기년도 예산확보도 어렵다고 한다. 냄비 정책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마솥을 걸어놓은 아궁이에 땔감이 다 떨어져도 남은 열기로 조리가 되듯 인내심을 갖고 뜸들 때까지 기다리는 가마솥 정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진 : 야외 공연장
오늘의 창동·오동동은 여전히 어두움이 짙게 깔리면 낮에 비해 더욱 황량한 모습으로 변한다. 마치 하얀 종이 위에 회색물감이 스며들듯 거리를 덮어버린다.
사진 : 창동 저녁 8시 거리풍경
마산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느 곳이든 작은 항구를 끼고 있는 지역들은 물론 지구촌 항구를 낀 곳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가 변신을 꾀하고 그렇게 해서 크게 성공한 사례를 여럿 볼 수 있다. 한때는 세계 미항 중에 하나로 꼽히는 요코하마 주변 ‘황금정’-고가네 쵸- 같은 지역은 거시적 정책을 펴면서 지금은 상당히 회복되는 분위기다. 예컨대 옛 아파트를 상업용 민박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여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 운영하는 것과 성매매 상징이었던 홍동가는 문화예술거리로 변화시켜놓은 것들이다. 물론 조금 떨어진 주변에는 차이나타운, 개항기 역사박물관, 요코하마 만국박람회장 등 보고 즐길거리가 많아서 후 효과를 누린다고는 하지만 엄두도 못 냈던 곳을 이처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역 토호 세력의 적극적인 동참과 행정가들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객은 불빛 화려함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의 특별한 속살 문화를 보고 싶어 한다.
‘에끼마에우동’- 역전(驛田-에끼마에)에서 운영하고 있는 우동집- 요코하마(서쪽 출입구)역에 1세기 넘게 이어오는 명물 우동집이 있다. 그 집 맛을 찾는 관광객이 늘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코하마역을 지나는 출장길에 우동을 먹으려고 역에 내려 이집을 찾아오는 손님이 상당수에 이른다. 크기는 5평 미만(주방 포함)이며 의자도 없다. 주방에서 건네는 우동을 손님이 직접 받아들고 후루룩! 작은 소리가 들릴 듯 서서 먹는 곳이다.
사진 : 요코하마 역 서쪽 출구에 위치한 서서 먹는 역전우동집
지금도 영업을 하는지 확인은 못했지만, 진주 시외버스 정류장 길 건너 오른쪽 방향 약 100미터, 냄비우동집이 하나 있다. 나무젓가락 굵기만한 가락면 위에 어묵 몇 조각과 잘게 썰어얹힌 유부조각 옆에 날달걀이 반숙이 되도록 살짝 익을 즈음 그 위에 쑥갓 몇 개를 얹어 내는 냄비우동집이다. 마산에도 비슷한 집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눈 씻고 봐도 없다. 다행히 옛 집 한곳을 찾아가 봤지만 그 때의 맛은 물론 멋도 재현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젓가락질 몇 번 하다가 주변 음식점도 이럴까 괜한 걱정까지 하며 젓가락질을 멈추고 물 한모금으로 입안을 헹구듯 하고선 이런저런 불평을 하기보다 반 이상을 남긴 음식이 주인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어주길 바라며 나와 버렸다.
여행객들은 지갑을 여는 기분으로 다니지 않는다.
유독 한국 음식은 1인분 사절이 많다. 혼자 오는 손님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메뉴 1인분을 판매할 경우보다 업주에겐 기준 2인분으로 시작되는 음식들이 유리하다. 1인분 사절의 이유다. 그러나 먹고 싶지만 혼자 여행 다니는 여행자라면 먹고 남은 것을 포장해서 가져가든지 억지로 다 먹을 각오를 하고 주문할 수밖에 없다. 실비집이나 통술집, 혹은 다찌가 그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듯 보인다.
김신지씨가 말하는 ‘통술’ , ‘다찌’, ‘실비’ 란
사진 : 김신지(79세) 통술집 운영
얼음 배달 장사가 호황을 누리던 때가 있었다. 냉장고가 귀한 시절 이야기다. 냉장고가 귀하다 보니 병맥주 소주를 손님상에 올릴 때 플라스틱 통에 듬성듬성 조각낸 얼음덩이를 넣은 다음 그사이 사이로 맥주와 소주 네댓 병을 넣어낸다. 맥주와 소주는 통속의 얼음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 보충한다. 이것이 통술의 유래라고 한다. 비슷한 유형으로 다찌와 실비집이 있다.
사진 : 통술
다찌는 일본어(たち?のみ-다찌노미)를 한국식 표현으로 줄인 말이며 ‘서서 마시는 것’ 立ったままで?むこと(닷따마마데 노무고또) 즉, 선 채로 마신다는 뜻에서 따온 말이다.
실비집은 ‘가격이 경제적이다’라는 인식을 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저렴한 비용이란 뜻인데 만약 실비집에서 음식을 시키면 재료의 원가 수준으로 먹을 수 있다는 뜻도 되지만 오동동 통술과 엄연히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김신지씨는 진주나 사천의 실비집 또는 다찌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 줬는데 이를 요약하면 이렇다.
실비집은 원래 싼 값으로 먹을 수 있어서 필요한 안주만 주문한다. 동행인이 많으면 이것저것 시키다 보면 오히려 부담될 수도 있다.
다찌는 그날그날 재료를 위주로 안주를 만들어준다. 사천(삼천포), 여수, 통영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조리사가 (주인) 매일 다른 해산물을 재료로 직접 만들어 내는 안주와 무관치 않다.
45년째 김신지 씨가 운영하는 통술집 술 안주를 잠시 들여다 보면
첫 번째로 나오는 안주(김신지 대표가 직접 조리)
두 번째로 나오는 안주(간장게장,장어구이)
세 번째로 나오는 안주 (물회)
계절따라 추가로 나오는 안주(세발낙지)
통술집은 영업 전 준비과정을 거친다. 안주 될 만한 것 중에 열처리가 필요한 것은 손님상에 낼 때하고 열처리가 필요 없는 안주는 미리 손질한다.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계절에 따라 준비한 음식을 순서대로 술상에 올린다. 많게는 40여 가지나 올라온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단골들은 거의 식사까지 겸한다.
세 종류 모두 가격은 비슷하지만, 가성비로 따지면 통술집이 유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통술집을 하려면 보통 조리실력 가지고는 힘들다고 김신지씨는 말한다. 전주 완산구 삼천동의 김은숙씨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평생 통술집을 운영해 오고 있는 김신지씨의 영업 철학이 여느 경제학자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은 “오늘 장사해서 조금 손해를 본다 싶어도 계속하다 보잉께 좋은 날이 오더라꼬예, 오늘 오는 손님한테 최대한 신선하고 깨끗한 음식을 차려냅니더,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이래하다 보잉께 우리집 가게 앞에만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립디더, 미안하고 해서 ‘오늘은 다른 집에도 한번 가보이소’ 다른 집으로 손님을 보내기도 했습니더, 내 혼자 잘되면 우짭니꺼?”
사진 : 김은숙 대표 (전주 삼천동 막걸리 전문점 운영)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 장면
김은숙씨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실행해 오고 있었다. “저희 집으로 손님이 너무 몰려오니까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주변 가게로 손님을 보낼 요량으로 일주일에 하루는 문을 닫았죠, 다른 집에도 한 번 들러보시라고요”
정성을 담은 음식점이 있다면 거리를 마다하고 찾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맛있고 신선한 음식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을 최우선시하는 영업전략을 손님들은 안주상을 받아보면 금방 알아차린다고 한다. 손님들이 입구에서 기다리는 이유다. 기다리는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옛 거리 창동·오동동을 찾는가?
이곳 주민이 외지로 나가 살다가 옛 추억을 회상하며 찾는 경우가 대다수고 특별한 제과점의 팥죽을 비롯해서 특별한 영업집을 제외하고는 옛 거리 창동·오동동으로 여행계획을 짜는 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사진 ; 배태훈(45세) 오동동 통술집 운영
오동동 상인 배태훈(45세)씨는 “이래가꼬 안됩니더” 작심하고 화풀이성 말을 던졌다. “그동안 여러 도지사를 거치면서 큰 도시 만드는 데 목적을 달성했다고 하지만 뒷골목 상권은 절벽 아래로 밀어 넣은 결과를 낳았지예.” 오동동만 살리자는 것이 아니라며 몇 가지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 “한시적이나마 마산 여행을 확정한 관광객을 위해서는 ‘100원 택시 운영’이 절실합니더.“
이미 여러 지역에서 실행하고 있는 ‘100원 택시’를 마산 특정 구역을 위해 실행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진 : 불종 조형물
화제나 비상시 종을 쳐서 위험 상황을 알리던 종이 있었던 불종거리 중심으로 보행자(관광객) 천국을 만들고 문화예술인들이 거리로 나와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하는 등 문화컨텐츠 플랫폼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는 버스킹공연처럼 골목에 머물고 있는 문화컨텐츠를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넓은 마당으로 나와야 한다. 관광객을 맞이하는 마중물이 되어 달라는 주문이다. 밤 11시, 부산 국제시장내 깡통야시장으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상인들은 즐거운 비명이다. 성공비결의 삼박자를 갖추었기 때문에 야심한 밤에도 손님이 몰려드는 것이다.
사진 : 창동 문화예술골목
고객을 상대로 돈을 벌려는 상인보다 관광객은 더 지혜롭다.
강원도 고향 곤드레밥이 서울에서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한다. 곤드레밥 고향에 가면 더 맛있겠다 싶어 가서 먹어보니 실망했다는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전국 어디를 가도 아구찜을 만날 수 있다. 마산의 명물 음식을 두고 그런 현상이 나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본고장 아구찜보다 더 신뢰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산 골목 경제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출이 없어 가게세를 내지 못하는 점포가 수두룩하다면 건물주 역시 속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한시적이나마 공동운영체제 또는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 땅이 얼마짜린데,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마소” 식의 아집을 버리지 못하면 공멸의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진 : 창동 부림상가 주말 모습
전국 어디를 가도 랜드마크도 없고 빼어난 관광명소가 마산에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한두 곳 정도는 자랑거리였을 수도 있지만 딱히 어디를 가봐야겠다며 목적지를 정해놓고 찾아가는 그런 곳이 못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그나마 야구장이 들어서서 그걸 위안 삼는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곳이 되고 있다면 너무 비약적일까? 혹 그렇다고 해도 실망할 수만은 없다. 한 분 한 분 정성스럽게 맞이하다 보면 오동동의 김신지씨,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 김은숙씨처럼 음식에 정성을 담아낸다면 SNS 등으로 소문은 금방 확산될 것이다. 여행은 보고 먹고 느끼는 삼박자 여정이다. 창동 오동동도 충분히 삼박자 여정을 즐기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고) 반야월 선생은 마산 돝섬을 사랑했다. 부산 송도 해수욕장은 어느덧 현인 선생의 상징성으로 부각되고 있음을 볼 때 가고파의 상징이기도 한 돝섬에서 ‘반야월 음악제’라도 추진하면 어떨까 싶다.
돝섬과 무학산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설치 또한 슬그머니 회자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를 아낀다는 마음으로 지역내에서 소비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다른 동네에서 가격경쟁력을 펴면서 더 좋은 즐길거리 볼거리까지 제공한다면 지역상권보호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인구절벽이 심화되고 가게를 찾는 손님은 줄어들고 여기에 더하여 소비층은 뻥 뚫린 도시형 고속도로를 이용해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는 지금, 순간현상의 결과만을 얻기 위해 행정을 편다면 냄비문화가 가마솥문화를 먹어치우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정겨움을 닮은 간판들
창동·
마산 창동·오동동에는 사람을 반기는 따듯한 가슴이 있고 여정의 재미를 더해주는 맛과 멋을 담은 삼박자 여정이 있다.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은 한국 방문 관광객 1,2위를 다투는 중국과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 관광객도 이곳 통술집 안주상을 받는 순간 엄지척을 해보이며 ‘원더풀’을 외칠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건물주와 세입자 구분 없이 모두 함께 팔 걷어붙이고, 여기에 더하여 100원 택시가 한시적이라도 운행을 해준다면 창동·오동동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통술 문화 관광특구로 거듭 태어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특집 취재 *마산은 없다.
창동·오동동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