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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의료계 과냉각 상태에 돌을 던지다
  • 편집국
  • 등록 2024-03-14 18:52:47
  • 수정 2024-04-11 09: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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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를 탓하는가?

의대 증원, 의료계 과냉각 상태에 돌을 던지다

 

화학에 과냉각 현상이 있다. 액체를, 어는 온도 아래로 내려도 얼지 않고 액체 상태로 있는 현상이다. 조용히 안정된 상태에서 천천히 온도를 낮추면 과냉각 현상이 나타난다. 서서히 식히면 분자가 굳어지지 않고 계속 움직이니까 온도는 내려가지만 얼지 않는다. 과냉각은 비정상적인 균형 상태다. 과냉각 상태는 외부에서 균형을 깨는 아주 작은 자극이 생기면 쉽게 즉시 갑자기 깨진다. 

 

우리 사회에도 과냉각 현상이 있다. 경제가 큰 환경 변화 없이 조금씩 조금씩 어려워질 때, 실제는 힘들어 포기할 한계점을 넘었는데, 조금씩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니 어느덧 한계점을 넘는다. 우리도 경험했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경기가 계속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는데 사업을 접지도 못하고, 어떻게든지 원가를 줄이고, 시간을 더 내서 일하고 심야 심지어는 24시간 문을 여는 상태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하면서 최저임금을 2년 동안(2017년 6,470원에서 2019년 8,350원)에 29%가량 올렸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가니 과냉각 상태로 겨우 버티던 자영업자들이 무더기로 문을 닫거나 도산했다. 세상은 연결되고 얽혀 있는데, 갑자기 소득만 강제로 올려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 의료계는 어떨까? 의사는 의사 총 수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숨과 관련된 필수 의료 분야(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뇌혈관과)가 모자란다. 필수 의료 분야가 과냉각 상태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대기 줄 같은 징후로 상태가 위험함을 경고했다. 

 

필수 분야 의료 수가는 원가의 70% 선이라 한다. 환자를 치료할수록 적자가 쌓인다. 이런 부조화 상태에서 어떻게 견뎌왔을까?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견뎌왔던 것이다. 가장 허리띠를 졸라맨 사람이 수련의, 전공의들이었다. 필수 의료 분야가 과냉각 상태였지만 불안한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과냉각 상태를 깨는 외부 자극이 생겼다. 필수 의료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보건복지부는 ‘의대생 2천명 증원’이란 돌을 던졌다. 필수 의료 의사 부족은 현재 문제인데, 의대 증원은 10년 이상 뒤에 나타날 효과일 뿐이다. 그마저 나중에 그들이 필수 의료로 갈 것이라 예측하기도 어렵다.

 

과냉각 상태는 갑자기 깨진다. 전공의 집단 사직은 그렇게 시작됐고, 사회 혼란이 시작됐다. 돌은 정부가 던졌는데, 이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욕한다. 생각없이 돌을 던진 쪽을 비난해야 맞을 텐데.

 

과냉각 상태는 본질에 맞게 조심스럽게 풀어야 한다. 본질에 맞는 대책도 조심스럽게 풀어야 할 것인데, 본질과 무관해 보이는 돌(의대 증원)을 갑자기 던지다니, 무슨 의도였을까? 세상은 연결돼 있어 만능 열쇠 하나로 풀리는 문제가 별로 없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면 경제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발상으로 밀어붙인 것과 뭐가 다를까?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 고려하여 치밀하게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 선진국이다. 뻔한 예측을 못한다면 무능력이고, 알면서 밀어붙였다면 다른 의도가 있다.

 

정책이 잘못됐다고 확인되는 순간 머리를 맞대고 다시 짜야 한다. 아프지만 본질에 맞게 해결하려 나서야 한다. 억지로 밀어붙이면 사태는 더욱 나빠진다. 그동안 구축했던 필수 의료 체계가 무너질 판이다. 무너진 기반을 복구하려면 오래 걸리고, 아니 복구하지 못할지 모른다. 나중에 그 좋던 의료 체계를 무너뜨린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누가 책임질지 모르지만 피해자는 약한 국민이다. 둑이 무너지면 가장 낮은 지역부터 잠긴다.

 

                                   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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