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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열아홉과 각자의 스무 살, <성적표의 김민영> 이재은·임지선 감독
  • 편집국
  • 등록 2022-09-23 08:20:39
  • 수정 2022-09-28 10: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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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가 거의 출연하지 않는다

2022년 한국 독립영화계의 반짝반짝 빛나는 여성 청춘 서사


 

정희, 민영, 수산나. 삼행시 클럽의 세 친구는 서로 다른 스무 살을 맞는다. 대학에 가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정희는 대학생이 된 민영의 초대를 받아 서울에 있는 민영네에 놀러 간다. 친구를 만나 들뜬 정희와 달리 민영은 성적 정정 메일을 쓰는 데에만 골몰해 있다.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스무 살의 풍경을 독특한 유머와 폭넓은 공감대로 그리고 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관객들의 기대를 받은 작품이다. 데뷔작에서 고유한 세계를 보여준 이재은·임지선 감독을 만났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단편으로 기획된 영화라 들었다. 장편으로 확장된 배경이 궁금하다.

이재은 감독_ 단편은 정희가 민영이 집에 갔다가 서운함을 느끼며 성적표를 남기고 오는 내용이었다. 주인공 나이대를 스무 살 초중반에서 열아홉, 스물 정도로 바꿨다. 정희가 대학에 가지 않는, 또래와 다른 선택을 한다는 설정이 들어가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졌다. 이 영화를 하기 전까지 지선 감독과 나는 각자 10분 안팎의 단편을 만들어본 게 전부다. 솔직히 말하면 단편과 장편이 각각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한다는 게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겁 없이 이 이야기를 장편으로 찍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걸 다 해볼 수 있는 게 장편이라 생각하고 만들어 나갔다.

임지선 감독_ 단편으로 만들었을 때는 정희가 바로 민영이 집에 놀러 가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희와 민영이의 전사(前史) 같은 고등학교 시절과 정희가 졸업 후 혼자 테니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이야기가 더 살 것 같아 앞부분 이야기를 만들었다. 단편 제작 지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영화를 시작하는 단계여서 그런지 그 지원금이면 장편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이 짧았다. (웃음) 아무래도 회차가 길다 보니 장편을 만들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사비로 채워 만들었다.

  

 이재은 감독(좌), 임지선 감독(우)

 

각본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이재은 감독_ 각자 해와서 합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만나서 같이 했다. 각본뿐 아니라 편집도 비슷한 방식으로 했다. 둘이 카페를 전전하면서 노트북 한 대 두고 모든 아이디어를 이야기해가며 만들었다. 그게 가장 오해가 없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주요 인물도 감독도 둘이다 보니 좀 더 잘 맞는 캐릭터를 맡아서 즉흥적으로 상황극도 하고, 인물이 되어 대본을 읽어보기도 했다. 

임지선 감독_ ‘공동 연출’이란 말에 맞게 모든 사소한 것까지 상의했다. 과정은 더뎠을지라도 그랬기 때문에 모든 게 합의된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계속 얘기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삼행시 클럽 같은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왔나 궁금하다. 두 감독이 주인공의 나이대에 써둔 글들을 활용하기도 했나.

이재은 감독_ 대사는 모두 이번에 각본 작업을 하면서 썼다. 과거에 경험했던 것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도 했다. 기숙사 생활을 오래 했는데 그때 친구들과 나눈 이상한 추억 같은 게 시간 지나도 기억이 나더라. 그런 걸 많이 가져왔다.

임지선 감독_ 대사는 인물에 맞게 만들어냈다. 삼행시 클럽이나 시트콤 같은 상상, 숲에 사는 상상 같은 건 평소 이재은 감독이 엉뚱하게 생각하던 거에서 따온 게 많다.

 

두 감독은 2017년 한겨레 영화연출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다고.

이재은 감독_ 2017년에 지선 감독을 처음 만났고 <성적표의 김민영> 촬영은 거의 2019년에 했다. 각자 일상을 살면서도 영화 작업을 위해 꾸준히 만났다. 주말에 만나서 작업하고 그랬다.

임지선 감독_ <성적표의 김민영>은 언제까지 찍어야 한다는 것도 없었고, 각자 학업 때문에 일정이 안 맞아 작업이 길어진 것도 있다. 그래서 더 어떤 압박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 없이 만들어갔다.

  

매체 연기를 통해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가 거의 출연하지 않는다.

이재은 감독_ 배우들이 캐릭터 나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서 실제 그 나이대 분들을 찾았다.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고, 일상의 톤을 가진 배우를 찾고 싶어서 연기경력이 많이 없는 배우를 캐스팅했다. 우리도 장편을 처음 연출하는 입장이라 연기경력이 처음인 배우와 같이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경험이 없어 마이너스가 되는 면은 없었다.

임지선 감독_ 드라마가 극적이지 않고 일상의 톤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경력이 없는 배우가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 톤을 만들기 수월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알려진 얼굴을 찾는 건 생각 안 하고 캐릭터에 맞는 인물 찾는 걸 우선했다.

 

주인공의 취향과 성격이 드러나는 기숙사 방 미술 콘셉트가 궁금하다. 창문에 붙은 김연아 선수 사진이 눈에 띈다.

이재은 감독_ 예산이 많이 없었는데도 가장 많은 비용을 투자한 부분이 미술이다. 영화적인 미술보다는 실생활에 가까운 미술을 하고 싶어서 구글에서 기숙사 사진을 많이 찾아봤다. 생활감 있는 소품들, 진짜 고등학생 방에 있는 소품을 작은 것까지 구입했다. 영화 속 공간은 실제 기숙사다. 원래 4인실에다 2층 침대가 있는 방이었는데 실제 내가 살던 기숙사 구조처럼 개조했다. 2인실에 두 명이 서로 등지고 앉아 공부하고, 침대가 나란히 있어서 한 사람이 잘 때 불을 꺼주는 식이었다. 그리고 민영 캐릭터는 멋진 여자나 연예인을 동경하는 캐릭터라 생각했다. 그래서 김연아 선수 사진을 붙였다. 영화 속 민영 책상에 보면 여자 아이돌 사진이나 명언 글귀 같은 것도 있다. 그런 걸 멋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민영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학생 민영이 지내는 서울 자취방 미술도 궁금하다.

임지선 감독_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채워 넣어야 했다. 민영이 아니라 ‘민영 오빠의 집’이기 때문에 오빠가 남긴 걸 콘셉트로 삼았다. 프라모델, 피규어, 자동차 핸들 게임, 키보드처럼 남자들이 좋아할 법한 제품을 가져갔다. 남자들만 있는 가족사진 같은 걸 통해 그 공간만 봐도 민영이가 어떤 스트레스가 있을지 전하고자 했다.

 

성인이 된 정희의 첫 일터로 테니스장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재은 감독_ 아버지가 엄청난 테니스인이셔서 테니스장은 나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도 테니스장 아르바이트였다. 정희라는 캐릭터가 대학에 가지 않고 어디서 일하고 싶어 할까 생각했을 때, 평온하지만 에너지가 있는 테니스장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민영의 꿈을 아이돌 가수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임지선 감독_ 민영이라면 힘든 상황에서 그런 걸 더 꿈꿀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드러내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꿈이라기보다 본인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남몰래 품고 있는 꿈. 스무 살은 아이돌을 시작하기도, 접기도 미련이 남는 애매한 나이일 수도 있다. 그런 것도 민영의 상태 중의 하나로 설정했다.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에피소드를 배우들이 재연한다. 만들어져 있던 이야기를 재연으로 작품에 녹여내는 게 기발하면서도 용감한 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이재은 감독_ 자료화면을 쓸 수 있음 쓰려고 했는데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재연밖에 없었다. 재연하기로 하고선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정희 상상 속에는 또 다른 톤의 세계가 있다. 이 장면 속 친구들 중엔 실생활에선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도 있는데 이들이 다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정희의 세계를 잘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임지선 감독_ 나도 그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모일 일 없는 친구들, 정희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주변의 인물들이 모여서 행복해하고 신난 모습에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랄까.

 

영화의 유머 감각이 인상적이다.

이재은 감독_ 영화를 찍으며 어떤 장면도 ‘여기서 웃겨야 되는데 뭐가 있을까’ 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시나리오 쓰고 콘티 짜는 과정에서 나왔던 아이디어들이 들어갔다. 그런 장면들이 영화를 억지스럽지 않게 만들어 관객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임지선 감독_ 영화 톤이 약간 특이하다 보니 테이크를 고를 때에도 말을 더듬거나 떡을 가위로 자를 때 실수로 떨어뜨리는 장면 같은 걸 더 선호했다. 그런 장면이 영화 톤에 더 맞다고 생각했다.

  

중심 서사는 아니지만 세 친구의 로맨스도 감지된다. 하지만 모두 불발되는 것 같다.


 

이재은 감독_ 스무 살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감정들을 많이 느낄 거라 생각해서 조금은 담고 싶었다. 정희와 정일이의 경우엔 삭제된 장면도 있다. 삭제했던 이유는 정희와 민영의 우정 이야기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다. 정일이 같은 경우엔 정희와 로맨스인지 우정인지 헷갈리는 감정이다. 정일이는 정희가 아줌마 아저씨들만 있는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또래라는 설정이다. 로맨스인지 아닌지는 관객 판단에 맡기려고 일부러 정하지는 않았다.

임지선 감독_ 스무 살의 과도기에는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있을 수밖에 없다. 불발된다면 거기서 오는 외로움의 감정이 느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특히 수산나에게서 폴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영화의 주제 의식을 담은 글들로 영화를 여닫는다. ‘김민영’ 삼행시와 정희가 민영에게 남긴 편지는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궁금하다.

이재은 감독_ 삼행시는, 시작하자마자 민영이의 캐릭터를 확실히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자기 이름으로 조금은 자조적인 삼행시를 하는 민영이를 통해 이 캐릭터를 확실히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암시도 있다. 또 마지막 편지엔 정희가 민영이에게 느끼는 서운함이나 민영이에 대한 애정, 응원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성적표이자 편지가 처음엔 객관적인 항목에서 시작하지만 점점 어투도 바뀌고 정희가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까지 간다. 이 영화는 민영이에게 서운함을 느꼈음에도 자신의 좋아하는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정희의 용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편지에서 정희의 용기가 드러날 수 있게, 마음을 다 쓸 수 있게 했다.

임지선 감독_ 편집을 하면서도 가장 많이 바꿨던 부분이 성적표 내레이션이다. 민영에게 서운함을 표현하지만 뒤로 갈수록 정희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편지 속에 수산나와 정일이의 모습을 담으며 외로운 스무 살을 겪고 있는 인물들을 한 번씩 건드려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수산나 장면은 추가촬영을 했고, 후시녹음으로 이야기를 추가하기도 했다. 공을 들여 노력한 장면이다.

 

연출자로서 서로에게 좋아하는 지점이 있다면.

임지선 감독_ 재은 감독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또 재은 감독은 굉장히 꼼꼼하고 집념이 강하다. 나 혼자였으면 바로 포기했을 것들을 집념으로 같이 해낸 부분이 많다.

이재은 감독_ MBTI 검사를 하면 내가 F(감정 중심)고 지선 감독이 T(사고 중심)다. 나는 시나리오 쓸 때나 연출할 때 인물의 감정 위주로 생각하고 이야기의 구조적인 면이나 기타 여러 가지 사항들에 대해 꼼꼼하게 생각을 잘 못 하는데 그런 면을 지선 감독이 거의 도맡아서 해줬다. 나도 지선 감독과 같이 해서 포기 안 하고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두 분이 영화감독이 되는 데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인물, 작품이 있다면.



이재은 감독_ 극장을 가면 사람들과 웃음 코드가 달라서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특히 코미디 영화 같은 거 보면 그랬다. 그러다 <파수꾼>이 한창 인기 있을 때쯤 독립영화를 처음 보고 이런 영화도 있구나 싶어서 다양성 영화를 찾아보게 됐다. 상업영화 말고도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단 걸 알고 그럼 나도 내 얘기를 할 수 있겠다, 내 얘기를 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과가 아닌 과에 진학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생각은 계속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를 3년쯤 다니고 휴학한 뒤 한겨레 영화학교에서 공부하고 방학 중에 영화를 찍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님 작품을 좋아한다.

임지선 감독_ 영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중학교 때 친구랑 UCC 광고 공모전을 하면서다. 원래 체력이 약한데 편집할 때는 쉽게 밤을 샜다. 또 아이디어를 내고 공동으로 뭔갈 만들어내는 일에 흥미가 있단 걸 느꼈다. 그럼에도 영화는 너무 어렵고 감히 할 수 있는 거라 생각을 못했다. 돌고 돌아 한겨레 영화학교를 다니면서 영화를 직접 찍어본 게 좋았고, 지금 영화를 전공하게 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공동 작업을 좋아했다. 이창동 감독님 작품을 좋아한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이재은 감독_ 1월부터 직장을 다니기 시작해 회사원으로 살고 있다. 처음 이 영화를 시작할 때도 다른 전공을 하고 있었다. 영화를 찍고 나서 1년 정도 글만 쓰기도 해봤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 영화를 하니 에너지가 더 많이 쌓였고 오히려 영화가 더 재밌고 하고 싶어졌다.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영화를 하는 게 나에게 좀 더 맞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임지선 감독_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다. 졸업작품 때문에 1년을 쭉 다녀야 해서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비교적 최근에 재은 감독과 같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트레일러 작업을 했다. <성적표의 김민영> 찍을 때 생각이 많이 났다.


기사제공 : 영화진흥위원회 ko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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